정치철학이 부재한 정치인의 위험성을, 민형배 의원이 발의한 필리버스터 제한법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겉으로 ‘국회 효율화’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이 법안의 진짜 목적은 소수 의견의 합법적 견제 수단을 아예 박탈하려는 권력 독점이다.
자신들이 소수당일 때는 필리버스터를 민주주의의 보루라 외치던 정당들이, 권력을 쥐고 나서는 그 보루를 거침없이 무력화하려는 모습은 자가당착을 넘어 정치적 기만에 가깝다.
‘일하는 국회’ 가장한 입법 독주의 위험
이 법안은 ‘정족수 미달 시 의장의 직권 중지’를 가능하게 해,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영구히 보장하려는 위험한 장치를 마련한다. 다수당에게 소수 의견을 배제할 쉬운 우회로를 제공하는 셈이다.
현행 제도에서 필리버스터를 종결하려면 재적 의원 5분의 3(180명) 찬성이라는 높은 장벽이 있다. 이는 다수당이라 해도 필히 협치와 공감대를 확보해야만 견제를 넘을 수 있게 한 민주적 합의의 정신이었다.
제한법이 통과되면, 다수당은 의도적으로 의원 출석을 조절해 단순 정족수(60명) 미달만으로, 복잡한 절차 없이 의장의 권한으로 토론을 중단시킬 수 있다.
이는 다수당이 반대하는 토론은 명분 없다고 자의적으로 규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하는 국회’라는 표어는 결국 ‘입법 독재를 위한 속전속결’을 감추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
‘5분의 3’ 합의 정신을 무력화하는 정족수 꼼수
필리버스터는 소수당 입법 투쟁의 마지막 무기이자, 국민에게 법안의 문제점을 알리고 숙의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합법적 수단이다.
제한법은 이런 견제 행위를 ‘방해’로 규정하며 소수 의견의 권한을 약화시킨다.
이런 태도는 정치철학이 실종된 현장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철학이 없는 정치는 일관된 원칙보다 당장의 진영 유불리만을 쫓는다.
힘의 논리를 국회법 언어로 포장해, 다수결이 곧 법이라는 퇴행적 정치를 반복한다. 국민들은 정치인의 언행에서 일관된 가치관을 발견할 수 없어, 이들의 행동을 국가를 위한 헌신이 아니라 진영 이기주의로 읽고 냉소하게 된다.
‘숙의’ 포기하고 ‘속도’만 추구하는 정치의 퇴행
민주주의는 토론과 합의를 통해 정당성을 획득한다. 필리버스터가 무력화되면, 국회는 오직 다수결의 속도만을 추구하고 법안의 질적 완성도와 문제점은 방치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절차를 훼손하며, 철학 없이 권력만 탐하는 정치인은 마땅히 공직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국회가 진정으로 신뢰를 회복하고 ‘제대로’ 일하려면 제도 손질의 꼼수가 아니라, 협치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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